여자친구와 함께 크리스마스로 선물로 책 주고받기를 했다. 여자친구가 인상깊게 읽은 책이라며 소개를 시켜준 책이였고 아주 짧은 분량이였기에 크리스마스가 가기전에 읽고 독후감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1940년대 후기에 작성된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쓴 2막의 부조리극이다. 시대상을 생각했을 때 글의 내용은 좀 더 이해하기 쉬워진다. 1940년대는 실존주의 문학이 발생하던 시기이다. 실존주의란 개인으로서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하는 문예사조이다. 당시 근대의 기계문명과 메카니즘적 조직 속에서 인간이 개성을 잃고 평균화.기계화.집단회 되는 소외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실존의 구조를 인식.해명하려고 하는 철학 사상이 생겨나고 있었고 실존주의 문학은 이에 맞물력 탄생한 문예사조이다.
극에는 에스트라공, 블라디미르, 푸조, 럭키, 소년이라는 5명이 나오고 이들이 극을 이끌어 나간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얼마나 기다린 줄도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며 어느 한 숲속에서 매일 만난다. 소년은 이들에게 오늘은 고도가 안 오니 내일 오라는 말을 남기며 극의 전환을 담당한다. 그러한 '고도'를 기다리며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에게 푸조와 럭키라는 존재가 나타나 사건을 만들게 된다. 이것이 전체 극의 흐름의 전부이다.
이 극에 나오는 인물들은 소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노쇠하고 비루하게 묘사된다. 이러한 장치는 극 중 인물들에게 사유 능력을 떨어트리고 자신들이 왜 숲속에 있는지, 자신들이 어떤 것을 하고 있었는지를 망각하게 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을 유발하게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관객을 씁쓸하게도 한다. 관객이 '고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그것이 우리의 관성으로 인한 것인지 반성하게 한다. 관성은 사람의 생각을 마비시킨다. 내가 왜 이 회사를 다니지? 내가 왜 공부를 하지? 내가 왜 열심히 살지?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다보면 나 스스로 에스트라공이나 블라디미르와 다른게 있나? 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사는 방식이 관성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건지 생각하게 된다.
이제 막 회사라는 조직에 1년을 일하다보니 관성에 빠져 일하는 사람이 많이 보였다. 많이 보인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성에 의해서 일하는 것으로 보였다. 큰 조직의 특성상 유별난 개인은 조직의 흐름에 방해를 놓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다들 자신을 숨기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이 든다. 또한 매일 같은 업무를 반복할 수 밖에 없는 직무가 있기에 이러한 직무에 있는 사람들은 관성에 의해서 일하는 것이 오히려 업무에서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기에 관성에 의해서 일을 하는 것이 마냥 나쁘다고도 판단할 수 없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라는 질문은 내 생애를 걸쳐 따라오게 될 질문이다. 따라서 나의 삶에서 고도는 좋은 삶일 것이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처럼 수동적으로 고도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고도를 찾아 나서는 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숲속에 가만히 앉아서 매일 오는 태양을 맞이하는 것만이 고도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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