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도서관에 가서 무엇에 홀린듯 책을 집을 때가 있다. 오늘 글의 소재가 되는 이 책도 그렇게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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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커 J 파머는 교육지도자이자 사회운동가이며 퀘이커교 신자이다. 파머가 80세가 되었을 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쓴 책이다. 요새 하라는 알고리즘 공부는 안하고 책만 읽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내가 많이 공감하는 부분이 존재하고 이 때문에 많은 감명을 받은 책이다. 죽음은 허무주의의 시발점이다. 이러한 허무주의에 빠져 많은 고민과 절망에 빠진 적이 있다. 이러한 부분에서 파머가 말하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인생의 의미가 깊어진다는 말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처럼 고민을 하지 않은 사람의 센치한 말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죽음은 결국에 자연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래 존재했던 그러한 상태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삶은 특별하고 우리는 매 순간 온전히 우리 자신으로 살아야하는 것이며 다른 특별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배풀고 공존을 해야하는 것이다. 자연은 공존이지 홀로 고립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도 죽기전에 '온전히 이기적으로 살아서 행복했어 라고' 말하면서 인생을 마무리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온전히 나로 살면서 배푸는 것, 이것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온전히 나로 산다는 것은 고립주의나 이기주의처럼 삶을 개인의 영역으로 한정 지으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보다는 삶을 온전히 느끼면서 내 모든 부분을 나로서 받아들이라는 의미이다. 내가 싫어하는 나의 단점, 내가 경험한 슬픔 등은 '나'이기에 경험한 것이고 '나'이기에 그렇게 느낀 것이다. 그렇기에 그러한 단점들을 품으면서 마음을 넓혀가는 과정이 나를 나로서 받아들이는 과정의 하나 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까지만 들으면 계속 반성만 하고 살라는 말이냐라는 의문이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그런 말은 절대 안 나올 것이다. 이 작가는 미국의 2016년 대선에 대해서 날카롭게 매선 비판을 한다. 이 작가가 의미하는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 분노 또한 포함 되기 때문이다. 분노는 나쁜 것이 아니다. 스스로 반성하고 마음을 넓혀가는 삶이라는 전제하에서 분노는 어찌보면 다른이들에게 배푸는 온정일 것이다. 만약 다양성의 가치, 인권에 대한 존중을 무시한다면 왜 2016년 대선에 분노하겠는가. 분노가 폭력적인 형태로 표현되는 것은 그러한 분노가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표현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분노를 삭히는 것은 배우지만 이를 올바르게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분노라는 감정 또한 우리의 감정이고 무시되고 억눌러야만 하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매순간 삶은 특별하다. 고난과 역경, 재미와 행복, 슬픔과 상실은 그러한 특별한 순간에 '나'에게 다가오는 손님이다. 이러한 손님을 통해 나의 마음은 더욱 성숙해지고 삶은 풍요로워 진다. 비록 많이 힘들고 절망스럽고 어두워보여도(작가는 40대때에 우울증으로 고생을 했다.) 이를 지나게 되면 같은 경험을 하는 이들을 공감하고 보듬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렇기에 나로서 이러한 감정을 받아들여 다른 특별한 삶들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이 책의 작가가 말하는 인생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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